서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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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z 2026. 2. 2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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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사과를 샀다. 번듯하고 커다란 사과 무리의 귀퉁이에 자리한 그 사과들은 정말 작고 상처가 있거나 볼품이 없었는데, 매직으로 ‘아픈 사과 20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평소라면 사지 않았겠지만 아픈 사과라는 말에 집으로 가져왔다.

가끔 독자가 인용한 내 글을 친구가 메시지로 링크해 보낸다. 그렇게 인터넷에서 사진 에세이를 봤다. 일하는 공장 그라인더에 남편의 발등이 잘리는 사고를 겪은 사람의 글이었다. 응급실의 오열과 고통의 세월을 통과한 후, 그의 발은 서서히 아물어 있었다. 그 에세이에는 내가 쓴 책의 문장을 인용해 “행복과 불행 그 사이에는 다행도 있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작가라고 자신이 쓴 글의 의미를 꿰뚫는 건 아니라, 되레 어렴풋했던 문장이 타인의 인용으로 더 선명해질 때도 많다. 1980년대 버스 운전석에는 ‘오늘도 무사히’를 기도하는 어린 사무엘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의아한 기분에 빠지곤 했는데, 이젠 인생의 대부분이 행복도 불행도 아닌 다행으로 채워진다는 걸 간신히 알게 됐다. 수많은 아무 일 없음과 별일 없음으로 우리는 오늘도 간신히 행복한 것이다. 집에 돌아와 아픈 사과를 베어 물며 시인 최정란의 시 ‘썩은 사과의 사람’을 읽었다.

가장 좋은 사과는 내일 먹겠다고/ 사과 상자 안에서 썩은 사과를 먼저 골라 먹는다/ 가장 좋은 내일은 오지 않고/ 어리석게도/ 날마다 가장 나쁜 사과를 먹는다/ … 오, 제발 이미 다 나빴으니 더 나쁠 게 없기를/ 나도 안다/ 가장 좋은 사과를 먼저 먹기 시작해야 한다/ 가장 좋은 사과를 먹고 나면/ 그 다음 사과가 가장 좋은 사과가 된다…

삶이 꽃이라면 매 순간 활짝 피어나고 또 훌쩍 지는 동백처럼 살 수는 없는 걸까.

친구의 SNS 상태 메시지는 “Life is suddenly”다. 이제 나는 인생의 일들이 계획한 대로 일어나지 않고, 사건은 무질서하게 벌어진다는 걸 알만한 나이에 이르렀다. 그렇게 제일 좋은 걸 아껴 먹던 시절의 나와 힘들게 결별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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