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시각장애인 부모들의 가장 큰 고통과 비애가 바로 자식들을 볼 수 없는 것이다. 부산 부전동에서 전통 안마사로 일하는 모 시각장애인(방송에도 여러 번 나오고 책도 내서 꽤 저명한 인물이다.)도 회고록에서 밝히기를, "눈이 안 보여 좋은 점은 아내의 늙은 모습을 볼 필요가 없어서 내 마음속의 아내는 여전히 20대의 고운 새댁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어떻게 컸는지 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슬프다."라고 했었다. 이 사람도 이동우처럼 후천성 시각장애인인데, 결혼하기 전부터 이미 시력을 조금씩 잃어가더니 아이들을 낳고 나서 전맹이 되었다. 즉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기억이 어린아이 시절 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들이 크고 있는 것을 아는 방법이 변해가는 목소리를 듣는 것과 커져가는 덩치를 안아보는 것밖에 없을 테니, 아이들이 큰 모습을 간절히 보고 싶을 것이다.
잘나가던 개그맨에서 망막 색소 변성증으로 두 눈을 잃게 됐을 때, 그에겐 어린 딸이 있었다. 힘든 나날이었다. 고통의 시간 속에서 자신을 다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딸의 결혼식은 볼 수 없을 거란 절망에 가슴이 미어지곤 했다. 개그맨 이동우 얘기다.
그에게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남자는 자신의 망막을 기증하겠다고 말했다. 당신 딸이 그린 그림을 다시 보게 해주겠다는 놀라운 제안이었다. 더 충격적인 건, 전화 속 남자의 상태였다. 그는 나무처럼 온몸이 굳어가는 루게릭병 환자였다. 그의 이름은 임재신이었다.
나는 하나를 잃고 나머지 아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그분은 오직 하나 남아 있는 것마저 주려고 합니다. 어떻게 그걸 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큐멘터리 '시소'(seesaw)는 볼 수 없는 남자와 움직일 수 없는 남자가 함께 떠난 제주 여행기다. 볼 수 있는 남자는 자신이 본 것을 끊임없이 보지 못하는 남자에게 얘기했다.
그가 본 제주의 바다 풍경 속에는 자신의 삶이 스며 있었다. 누가 이 휠체어를 밀어서 바다에 빠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 번 고민했다고. 루게릭 진단을 받은 후 적어도 1년은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남자가 깨달은 건 중증 장애인은 죽을 때조차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살아야 하는 거구나. 그때 알게 됐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가 이제 자신의 얘길 했다. 세상 모든 풍경이 어둠에 잠긴 후, 알게 된 세상에 대한 얘기였다. 그는 그 세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자신의 손가락 끝에 새로운 눈이 생겼다고, 바람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얻게 됐다고도 말했다.
"조금 어려운 말로 하면 듣는다는 건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본질에 가까워. 눈에 보이는 건 껍데기일 수 있거든."
사는 게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사는 게 이만큼 아팠던 사람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상적인 건 이들의 눈물이 아니라 웃음이었다. 불편한 몸 때문에 자꾸 먼저 당도하는 불안과 슬픔 대신, 기쁨에 자주 손짓하는 그 환한 웃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