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게도 몇 가지의 직업병이 있다. 손가락 손바닥 주변이 아픈 건초염은 너무 오래 노트북 자판을 쳐서, 좌골 신경통은 오래 앉아 있는 직업 특성상 생긴 기능성 장애다. 우울한 마음을 친구에게 호소하던 날, 노트북이나 자판을 바꿔야 한다는 충고를 들었다. 며칠 후, 그에게서 온 이메일에는 노트북과 자판, 마우스의 장단점들이 일별되어 있었다. 고마웠다. 하지만 기계치인 나를 타박하는 말투가 좀 섭섭하기도 했다.
힘들어할 때, 그 사람의 마음을 공감해주는 일이 현실적인 충고보다 먼저라는 걸 매일 깨닫고 있다.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면서부터 더 그렇다. 그래서 고민 사연의 대부분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같은 말로 시작한다. 헤어진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며, 부모님께 인정받지 못한 마음이 얼마나 추울까. 구체적인 조언은 그 후다.
이젠 점점 서툰 내 얘길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간다. 혼자 있을 친구의 외로운 마음이 슬퍼 자기 시간을 내어주는 그 마음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된다. 어떻게 친구를, 아이를, 부모님을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겐 읽어주고 싶은 문장도 생겼다. 데이비드 리코의 '나는 왜 이 사랑을 하는가'의 한 문장이다.
"한 사람의 경험 속에는 이해할 수 없고 가닿을 수 없는, 익명인 채로 남아 있는 감정이 때때로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실제로 그 순간에 어떤 느낌인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모릅니다. 그럴 때는 단순히 그 내면의 신비를 존중해주는 것이 지원일 수도 있습니다. 달리 도울 방법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저 햄릿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내 영혼아, 조용히 앉아 있자.'"
말은 특유의 온도를 가지고 있어서, 약해진 사람에게 얼음처럼 박힐 때가 많다. 그러므로 이때의 침묵은 단지 말이 삭제된 상태가 아니다. 이때 침묵은 주위를 투명하게 밝혀, 그의 시린 마음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이럴 때의 침묵은 그저 흘러 넘쳐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