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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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z 2026. 7. 3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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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계정을 만든 날짜를 다시 확인했다. 18년. 강산이 거의 두 번 바뀔 시간이다. 그 세월 동안 나는 파란새 아이콘 앞에 앉아 하루를 열고 닫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불 속에서부터 이 앱을 켰고, 밤에는 이 앱을 끄고서야 눈을 감았다. 처음 가입했을 때는 이곳이 이렇게 오래 내 하루의 뼈대가 될 줄 몰랐다.

140자 제한이 주던 그 알량한 긴장감이 그리워질 줄도 몰랐다.

원하는 사람의 소식을 받아보려면 휴대폰 액정에 FOLLOW @아이디를 영타로 또박또박 입력해야 했다. 누군가의 좋은 글을 배달하려면 앞머리에 RT @아이디: 를 손수 적어 넣고 그 뒤에 본문을 그대로 옮겨 붙여야 했다. 자동으로 된는 버튼이 없었다. 내 의견을 덧붙이는 인용은 QT @주소를 도스 명령어처럼 조합해야 했고 글이 길이지면 원문 뒤는 잘려 나갔다. 은밀한 귓속말 DM은 D @아이디라는 조심스러운 명령어로 시작되었다. 띄어쓰기를 제대로 안 하면 모든게 공개가 된다. 그 모든 수동의 절차를 손끝으로 밟아가던 시절부터, 나는 이 창 하나를 켜 놓고 살았다. 그런데 그런 불편함마저 그리워질 줄은 더더욱 몰랐다.

그 불편함이 고스란히 낭만이 되던 순간을 나는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2011년 4월 28일, 영국 정치인 에드 볼스가 자기 이름을 검색하려다 검색창과 글쓰기 창을 헷갈렸는지 타임라인에 덜렁 “Ed Balls”를 트윗해 버렸다. 그는 실수를 알고도 글을 지우지 않았다. 그 에피소드는 몇 시간 만에 내 타임라인에도 리트윗을 타고 도착했고, 나는 그 사람 좋은 무심함에 낄낄대며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투박함 덕에 이후 매년 4월 28일이면 나는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 함께 “Ed Balls”라고 복사해 올리는 이벤트을 치렀다. 잘못 쥔 기술 앞에서 국적이 다른 정치인과 아무 상관 없던 내가 함께 웃을 수 있던, 허물없고 순수했던 시절이었다.

@Realtaeyang 님에게 보내는 답글 yessir!!아 근데 이거 뭐가뭔지 하나도 모르겠어ㅡ 2012년 7월 17일 G-DRAGON @IBGDRGN


그 웃음의 온기가 채 식기도 전에, 이 창은 내게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2010년 1월 4일 한겨울 대한민국을 얼려버린 기록적인 폭설 속, 박대기 기자가 여의도 한복판에 서서 몇 시간째 눈을 맞으며 중계를 이어가는 모습이 내 타임라인을 가득 채웠다. 처음엔 어깨에 살짝 얹힌 정도였던 눈이 뉴스가 거듭될수록 머리와 등까지 소복이 덮어갔고, 사람들은 그 변화를 시간대별로 캡처해 실시간으로 퍼 날랐다. 나는 그 위태로운 눈사람을 지켜보며 안쓰러움과 웃음 사이 어디쯤을 오갔고, 같은 타임라인 위로 대피소 안내와 서로의 집 앞 눈 치우기 인증이 리트윗을 타고 함께 번져나갔다. 그렇게 나는 이 작은 창을 통해 시대를 살았다.

이 창을 닫는다는 건 그러니 단순히 앱 하나를 지우는 일이 아니었다.

아아~~~마이크 시험중~~~is there anybody listening? 2010년 5월 11일 신해철 @cromshin


같은 창으로 나는 사람도 잃었다. 18년이라는 세월은 무수한 인연이 소리 없이 피었다 저물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름만 알던 이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직과 퇴직을 하는 걸 나는 지켜봤다. 그러나 정작 나를 무너뜨린 건 그 찬란한 변화가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조용히 멈춰버린 계정들이었다. 프로필 사진은 몇 해 전 그 얼굴 그대로인데, 더 이상 고쳐지지 않는 소개글만이 그가 그 시절에 홀로 머물러 있음을 증언했다. 이따금 무심코 그 페이지를 스쳐 지날 때마다 나는 화면을 두어 번 위로 튕겨보곤 했다. 혹시 새 글이 하나쯤은 있을까 하고. 그러나 그곳의 시간은 늘 같은 자리에서 멈춰 있었다. 나는 그 정지된 공간들을 차마 끊어내지 못하고 타임라인 한구석에 그냥 두었다.

저...멘션이 머져???? 아파트 같은건가요??/@@ 2010년 5월 18일 신해철 @cromshin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오래 붙든 건, 계정은 살아 있는데 주인만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버린 흔적이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나와 함께 밤새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라고 웃던 이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지막 인사조차 없이 타임라인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사고란 늘 그런 식이었다. 예고도 유예도 없이, 어제까지의 웃음소리 뒷편에 그대로 정적으로 내려앉았다. 나는 몇 번이고 그 프로필을 새로고침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굿모닝” 한마디가 뜨기를 바라며. 화면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 있었다.

로봇청소기를 처음 써보았는데 얘가 바닥에 걸리적거리는게 있으면 움직이지못하고 제자리만 뱅뱅돌아서 같이다니면서 걸리적거리는거 다 치워줬더니 결국 내가 청소다했다 2015년 2월 7일 멋쟁이희극인 박지선 @gagjidol

아침에 화장실 변기가 터진 줄 알고 깜째기 놀래서 나가봤더니, 엄마가 거실에서 전기담요로 청국장을 띄우고 있었다 신난다 집에 화장실이 5개는 생긴 기분이다 2011년 1월 2일 멋쟁이희극인 박지선 @gagjidol


그 멈춘 계정들은 지금 내게 사이버 공간의 비석이다.

가끔 밤늦은 시간,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나는 그 비석 같은 프로필을 찾아간다. 예전에 나누었던 멘션과 실없는 농담을 하나씩 거슬러 읽어 내려가다 보면, 화면을 쓸어내리는 손끝이 서늘해지다 못해 시큰하게 아려온다. 그들이 남긴 마지막 몇 마디는 대개 아주 사소했다. 오늘 저녁은 뭘 먹었는지, 날씨가 얼마나 좋았는지, 내일은 뭘 할 예정인지.

누구도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을 그 사소함이야말로 가장 아프게 남는다. 남겨진 내가 그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마지막 트윗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떼기를 몇 번, 답장 창을 열었다 닫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결국 아무 버튼도 누르지 못한 채 화면만 오래 들여다볼 뿐이었다. ‘좋아요’라는 가벼운 버튼 하나로는 도무지 담을 수 없는 마음이 있다는 걸, 나는 그 앞에서 매번 다시 배웠다.

"이 고추는 하나도 안맵다 너도 먹어봐" 라며 본인이 먹던 고추를 건네주는 엄마 얼굴에 땀이 비오듯헌다 2012년 11월 6일 멋쟁이희극인 박지선 @gagjidol


그렇게 무거워진 마음을 나는 엉뚱한 곳에 풀어놓기도 했다. 나눴던 멘션이 문득 부끄러워지는 밤이면, 나는 옛 대화들을 하나하나 찾아 지우고 앉아 있었다. 검색창에 그 이름을 쳐 넣고 스크롤을 몇 백 번 내려가며 손끝으로 지우는 문장 하나하나가, 그 시절의 나를 조금씩 덜어내는 일 같아서 다 지우고 나면 후련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오히려 더 헛헛해지곤 했다. 남는 건 삭제되었다는 표시뿐, 그 사람과 나눴던 시간까지 지워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엄마가 일주일째 콩밥만 하고 있다 난 콩이싫다 콩밥보다는 현미밥이 나을 것 같아서 "엄마 현미가 몸에좋대" 했더니 오늘 현미콩밥이 나왔다 2013년 12월 27일 멋쟁이희극인 박지선 @gagjidol

"울아들 지선이 소개해줄까 37살인데 아! 근데 안되겠다 울아들은 이쁜여자 좋아한다" 라고 말하는 동네 아줌마에게 엄마가 "야 이 여편네야 울딸도 영계좋아해!!!!!!!!!!!!!!!!!!!!!!" 라고 했단다 엄마가 엄마가 내 취향을 정확히 알고있다 2013년 10월 15일 멋쟁이희극인 박지선 @gagjidol


그렇게 수많은 이들의 뒷모습을 배웅하고 비석 앞을 서성이는 사이, 나도 몇 번의 이름을 거쳤고 몇 번의 소개말을 고쳐 썼다. 마지막으로 정착한 소개말은 “deadpan|tldr, 3 liner|original fiction”이었다. 세 줄에 반전과 냉소와 삶의 애환을 욱여넣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정작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눈물겨운 문단은, 이 타임라인 위에 그리고 먼저 떠나간 이들의 지워지지 않는 마침표 뒤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눈시울을 붉어지게 만든다. 세 줄로 세상을 요약하겠다고 큰소리치던 내가, 정작 이 이별 앞에서는 세 줄로도 다 담지 못할 말들을 끌어안고 있었다.

무엇이 변했는지 하나씩 짚기는 어렵다.

플랫폼은 이름을 바꾸었다. 리트윗이 아닌 펌질이 대세가 되어버렸다. 알고리즘은 이제 타 플랫폼에서 퍼온 영상부터 먼저 들이밀었다. 유머와 정보의 전파력으로 굴러가던 자리를 관종끼가 채웠고, 비타민 같던 하루 한 스푼의 재미는 어느새 도파민을 재촉하는 자극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플랫폼 탓만은 아니다. 열여덟 해를 채우는 동안 나라는 사람도 계속 바뀌었고, 그 변화 속도가 이 공간이 요구하는 즉각적이고 말초적인 리듬과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 것뿐이다. 세 줄로 세상을 요약하는 재미는 여전한데, 그 세 줄을 던져 넣을 곳이 꼭 여기여야 할 이유는 이제 없다.

그래서 접는다고 해서 거창한 결심이나 선언 같은 건 없다. 그저 18년째 밤낮으로 켜 두었던 아이폰에 앱 하나 조용히 삭제하는 일이다. 새벽에 눈 뜨자마자 습관처럼 열어 보던 타임라인, 어쩌면 아니 틀림없이 이것이 없는 아침이 처음엔 허전할 것이다. 눈이 먼저 검정색 아이콘이 있던 자리를 찾아 헤맬 것이다.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홈 화면의 빈자리를 또는 그 자라애 놓여진 다른 앱아이콘을 누를 것이다. 그러나 그 허전함도 언젠가는 다른 무언가로 채워질 것이라는걸, 이제는 분명히 확신한다.

그동안 스쳐 간 모든 얼굴들에게, 어느 날 말없이 잠수를 타버린 옛 시절의 이들에게, 하늘의 별이 되어서도 여전히 내 타임라인 어딘가에 숨 쉬고 있을 그리운 이들에게 뒤늦은 인사를 남긴다. 언젠가 나 역시 이 타임라인 어느 구석에서 파란 불이 꺼진 이름으로 남을 것이다. 그때 누군가 내 마지막 트윗 앞에서 나처럼 아무 버튼도 누르지 못한 채 오래 머물러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내 세 줄짜리 같잖은 트윗에 웃어주거나 시간을 내준 모든 이들이 있어서 나의 18년은 외롭지 않았다.

접는다. 트위터 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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