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아이디어를 냈고,
B가 실험을 고안했고,
C가 기술적 문제를 해결했고,
D가 결과를 정리했고,
E가 초고를 썼고,
F가 E의 원고를 싹 고쳐 다시 썼으며,
G가 최종 분석을 진행하고 이 연구의 함의를 정리했다.
누가 제1 저자인가?
모두 공동 저자로 간주하면 연구 윤리에 적합한가?
‘N분의 1’이라는 타협이 감추는 연구의 진실
하나의 학술 연구가 완성되어 논문이라는 형태로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수많은 이들의 손길이 거쳐 간다. 누군가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던지고, 누군가는 그것을 검증할 실험을 설계하며, 또 누군가는 실험 중 발생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한다. 데이터를 정리하고, 초고를 쓰고, 그 초고를 다시 완전히 뜯어고치며, 마지막으로 연구의 학술적 함의를 도출해내는 과정까지, 연구는 그야말로 고도하고 정교한 협업의 산물이다.
이처럼 다양한 기여가 얽혀 있는 상황에서 연구자들이 가장 흔하게 빠지는 유혹이 있다. 바로 "모두가 고생했으니 공평하게 모두를 공동 저자로 올리자"는 온정주의적 타협이다. 갈등을 피하고 팀의 화합을 도모하려는 이 ‘N분의 1’의 선택은 언뜻 평화롭고 정의로워 보인다. 그러나 연구 윤리라는 냉엄한 잣대를 들이대면, 이러한 타협은 오히려 연구의 공정성을 무너뜨리고 진짜 기여자를 소외시키는 또 다른 형태의 부정행위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바로 학계에서 경계하는 ‘부당한 저자 표시(Gift/Guest Authorship)’다.
국제의학학술지편집인위원회(ICMJE)를 비롯한 글로벌 학계의 엄격한 기준에 따르면, 논문의 저자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노동이나 수단'을 제공한 것을 넘어, 연구의 본질을 좌우하는 '지적 기여'가 있어야만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참여자들의 역할과 지분은 결코 평등할 수 없다.
우선 아이디어를 낸 A, 기술 문제를 해결한 C, 결과를 정리한 D는 엄격하게 판단하자면 저자 명단에서 제외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다. A의 아이디어는 구체적인 연구 설계로 이어지기 전의 초기 단계의 구상에 불과하며, C의 기술 지원은 연구의 학술적 가치 자체를 결정짓지 않은 기능적 도움일 뿐이다. D의 결과 정리 역시 이미 도출된 데이터를 다듬는 기계적 가공에 가깝다. 이들의 기여는 결코 가볍지 않지만, 저자(Author)의 자리보다는 논문 말미의 사사(Acknowledgment)란에 이름을 올려 공로를 기리는 것이 국제 표준에 부합한다.
그렇다면 연구를 실질적으로 이끈 ‘제1 저자(First Author)’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기여의 깊이로 볼 때 초고를 싹 고쳐 다시 쓴 F나, 최종 분석을 통해 연구의 결론과 학술적 함의를 정립한 G가 가장 유력하다. 글을 완전히 다시 쓰고 결론을 도출했다는 것은 논문의 논리적 뼈대와 학술적 가치를 사실상 완성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혹은 실험을 전체적으로 고안하고 주도한 B가 제1 저자가 되고, F와 G가 공동 제1 저자나 교신 저자로 책임을 나누는 구조가 합리적이다.
모든 기여자를 동등한 저자로 묶어버리는 타협은 두 가지 치명적인 왜곡을 낳는다. 첫째는 밤을 새우며 논문의 결론을 도출하고 논리를 완성한 진짜 주역들의 노고를 희석시키는 일이다. 둘째는 학술적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저자라는 타이틀의 혜택만 누리는 ‘무임승차자’를 양산하는 일이다. 만약 추후에 논문의 데이터나 결론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견되어 철회 위기에 놓인다면, 단순 데이터 정리만 도운 D나 기술 지원을 한 C가 그 학술적 책임을 온전히 짊어질 수 있겠는가? 저자권(Authorship)은 권리이자 동시에 무거운 책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연구 현장에 만연한 온정주의적 타협은 배려가 아니라 기만이다. 진정한 연구 윤리는 모두에게 똑같은 지분을 나눠주는 기계적 평등이 아니다. 각자가 흘린 땀방울과 지적 기여의 무게를 엄밀하게 저울질하여, 그에 걸맞은 저자의 서열과 역할로 투명하게 증명해 보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동료 연구자들의 학술적 영혼을 예우하는 가장 올바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