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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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z 2026. 3. 1.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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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들고 내포 지방을 여행한 적이 있다. 수덕사나 개심사는 물론이고 마애삼존불, 추사 고택, 이지함 묘소 등을 보았다. 20년 만에 역사학자와 이곳을 다시 답사했는데, 이순신 장군이 해미읍성에서 병사영의 군관으로 근무하고, 다산 정약용이 내포에서 책을 집필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윤봉길, 김좌진, 유관순 같은 독립운동가도 이곳 출신이 많았고, 실학자 이중환도 택리지에서 극찬할 만큼 내포 땅은 풍수가 뛰어났다.

흥선대원군이 2대에 걸쳐 천자를 낳는다는 이곳에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이장하기 위해 가야사를 파괴한 일은 현재 ‘가야사 발굴 현장’이라는 푯말로도 확인할 수 있다. 유명인들의 유적을 찾아 가파른 계단과 산 중턱을 오르며 내가 깨달은 건 ‘땅’에 대한 조선인들의 종교적 믿음이었다. 왕자나 공주의 탯줄을 모시는 ‘태실’이 존재했다는 건 태어나는 순간부터 ‘풍수’가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조선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삶의 전 과정이 수미 상관하게 땅과 연관돼 있었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톨스토이의 단편이 있다. 한 농부가 하루 동안 걸어 다닌 크기만큼의 땅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단 해가 지기 전까지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농부는 해가 뜨자마자 달려 가능한 한 큰 원을 그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종일 달리던 농부 앞에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는 출발점으로 돌아오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하지만 출발선을 넘자마자, 가쁜 숨을 몰아쉬다 죽고 만다. 결국 그에게 필요한 땅은 머리와 다리가 들어갈 수 있는 2미터가량의 무덤뿐이었다.

부동산 값은 올라도, 내려도 늘 문제였다. 답사 여행 중 친구와 통화하면서 땅 사러 갔냐는 질문에 웃음이 터졌다. 답사 중 시골의 땅에 막대기처럼 꽂힌 촘촘한 어린 나무를 보며 보상을 받기 위한 편법인가 의심부터 드니, 이것이 LH 사태가 남긴 국민적 트라우마 아니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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