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미뤄졌던 비즈니스 미팅이 이어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코로나가 바꾼 게 마스크 회의뿐이 아니란 걸 절감했다. 1년 넘게 집에만 있는 동안, 세상이 미친 속도로 변한 것이다. 연로한 부모님도 처음으로 시장이 아닌 새벽 배송으로 장을 보고, 배달 앱으로 음식을 주문해 먹었을 정도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과거의 말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100세 시대를 맞아 직업을 5~6가지 가지게 될 것이란 미래학자들의 예견을 ‘책’이 아니라 ‘현실’에서 만나는 요즘이다. 디자이너, 유튜버, 작가, 사진가, 동기 부여 강사. 며칠 전, 건네받은 명함 속 다섯 직업은 ‘N잡러’라는 신조어를 몰라도 낯설지 않다.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액체성’은 어디에도 담기고, 어떻게든 흘러가는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현재를 적확하게 정의했으니, 코로나가 촉발한 이런 변화 속도라면 우리는 ‘물만큼’ 유연해져야 생존할 것 같다. 최근 귀에 인이 박이게 들은 ‘뉴 노멀’도 결국 세상의 기준점이 바뀌었다는 뜻 아닌가.
그러나 ‘전문가’일수록 혁신이 힘든 것도 사실이다. 문제를 정의할 때부터 이미 오랜 경험과 관점이 내면화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의 언어를 빌리면, 경력이 긴 전문가는 오히려 기준점 편향, 즉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가령 휴가철이 되면 비는 집을 빌려주거나, 사용하지 않는 자동차를 이용해 돈을 버는 아이템도 전혀 다른 분야에서 ‘흘러’나왔다.
‘모른다’는 말을 이렇게 자주 하게 될 줄 몰랐다. 그러니 오십이 넘어 ‘유학’을 간다거나 ‘외국어’를 배우는 일도 빈번해질 것이다. ‘모른다’는 말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모르니 멍청하다’가 아니라, 모르니 알고 싶다’는 말로 말이다. 숭산 스님도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말미에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말을 쓰곤 했다. 이제 ‘일한다’는 ‘배운다’는 말과 동의어다. 예측이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