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벚꽃이 지던 공원을 친구와 걸었다. 그녀는 요즘 자신의 삶이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좋은 일 있었냐는 내 말에 그녀는 “아무 일도 없어”라고 답했다. “어느 날 불행이 확 덮치니까 행복도 그렇게 일어나나 싶었는데 안 그렇더라. 행복은 별일 없이 소소하더라.”
지난 몇 년간 그녀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마흔이 넘자마자 발병한 암으로 여러 번 항암 치료를 했고, 쌓아온 경력도 투병 생활과 함께 날아갔다. 통증과 불면이 기본 값이었던 시절을 견뎌온 사람들은 끝내 깨닫는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걸, 그래서 별일 없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걸 말이다.
과거 때문에 불행한 사람이 있고, 과거 때문에 행복한 사람도 있다. 전자는 화려했던 과거의 기억 때문에 현재가 초라해 불행하고, 후자는 과거의 형편에 비해 현재가 편안해 행복해한다. 삶이 결코 공정하거나 공평하다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내 편에서 생각과 해석은 달리할 수 있다. 과거의 큰 불행도 내 입에서 가볍게 나오면 듣는 사람도 그리 받아들인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은 지나갔으므로 이제 내 탓인 시간이 남은 것이다.
트라우마라는 말이 일상적이다. 그러나 인생을 살며 겪는 사소한 불행까지 상처로 인식하면 행복해지기 어렵다. 어디에선가 날아온 화살에 팔을 맞았는데, 화살이 날아온 곳과 이유 등을 분석하느라 화살을 뽑지 못한 채 산다면 어찌 되겠는가. 중요한 건 화살부터 뽑아내는 것이다. 삶을 항해에 비유하면 인생에서 부는 바람과 파도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어떻게 내게!’가 아니라 ‘나에게도!’ 이런 일이 닥칠 수 있다고 준비하는 사람에겐 평범한 이 순간이 소중한 것이다. 중요한 건 상처 받지 않는 게 아니라 상처의 시간을 다독여 잘 보내는 것이다.
벤치에 앉아 바라보니 양지바른 곳의 벚꽃은 지고 없었다. 하지만 그늘 속의 벚나무는 아직 한창 개화 중이었다. 일찍 피니 일찍 질 뿐, 그저 때가 다를 뿐이다. 악착같이 좋은 점을 발견해내는 그 마음이 화양연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