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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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z 2026. 2. 2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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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여행 계획을 잔뜩 세워놓고 막상 가야 할 날이 다가오면 가기 싫은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이유 중 하나는 짐 싸기였다. 짐 가방을 싸다 보면 늘 필요해서 넣어야 할 물건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우산도 필요할 것 같고, 신발도 여분이 필요할 것 같고, 춥거나 더울지 모르니 두껍고 얇은 옷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밤중에 옷장을 뒤지는 일도 잦았다. 물론 편한 슬리퍼와 활동성 좋은 운동화와 공연장에 신고 갈 하이힐을 동시에 넣으면 좋겠지만 내가 가진 트렁크 크기는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

무한대로 늘어나는 트렁크는 세상에 없다. 그러므로 가방에 넣을 뭔가를 선택한다는 건, 트렁크 안의 다른 것을 빼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삶도 이와 비슷해서, 어쩐지 필요할 것 같은 마음으로 트렁크 안의 물건을 넣었다 뺐다 수시로 반복하는 불안함이 내 삶을 지배했다는 걸 깨달았다.

일상에서 최대한 선택의 순간을 줄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선택의 심리학에 대해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가령 초콜릿 쿠키의 숫자가 많을수록 다른 걸 먹었더라면 더 맛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커진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우리가 과거에 비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도 역설적으로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인지 모른다.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퍼질수록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냉정히 말해 삶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견디는 일에 가깝다.

여행을 가면 깨닫게 되는 것 중 하나는 필요할 것 같아서 넣은 물건을 쓰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필요할 것 같은 그 마음을 잘 다스려야 삶이 평온하겠구나 싶은 건, 오히려 물건들을 ‘살’ 때가 아니라 ‘버릴’ 때다. 터지기 직전 배낭에서 물건을 덜어내고 한결 가벼워진 어깨에 기분이 좋아진 여행자처럼 말이다. 분명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뭘 더 살 수 있을까가 아니라, 뭘 더 덜어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여행자의 여정을 더 깊이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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