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하버드대에는 첫 과제로 악명 높은 유명한 미술사 수업이 있다. 지역 박물관에서 그림이나 조각 작품을 딱 하나만 선택해서 3시간 동안 감상하는 것인데, 이때 이메일과 일체의 소셜 미디어 확인은 금지다. 이 과제의 목적은 ‘의도적인 천천히 보기’다.나는 한때 시간을 15분 단위로 나눠 썼다. 참고용 영상을 종종 1.5배속으로 봤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해 안달 난 생산 강박증 환자였다. 내가 이 패턴에서 벗어난 건 코로나로 많은 일이 취소나 연기된 탓이었는데, 어느 날 나는 0.5배속으로 동영상 하나를 봤다. 우연히 잘못 맞춰진 설정 탓이었다.처음 내 눈에 보인 건 표고버섯의 주름 패턴이었다. 연달아 버섯이 핀 나무 밑동을 걸어가는 딱정벌레의 발가락이 보였다. 가장 놀란 건 버섯을 따는 여자의 손가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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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3. 9.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