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날씨가 변해서 비를 맞게 되는 경우가 있다. 비를 피해 카페의 2층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을 보았다. 문득 산속 홀로 서 있는 웅장한 소나무를 볼 때, 화가와 목수의 시선이 다르다는 스님의 얘기가 떠올랐다. 그림의 소재인 멋진 노송을 무참히 베는 목수가 화가의 눈에는 ‘악’이지만, 목수에겐 튼튼한 집의 기둥이 되는 것이 ‘선’이니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관점의 차이로 가까웠던 사이가 소원해지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는 정치·경제·젠더·세대·환경 등 다양한 이유로 관점이 달라 심지어 서로를 증오하기도 한다.
그러나 익명성 뒤에 숨는 온라인과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SNS와 유튜브에서는 동종 교배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 동종 교배가 위험한 건 필연적으로 열성 인자를 만들기 때문이다. 열성 인자가 지속되면 결국 그 종은 멸종에 이른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은 대가는 크다. 무엇보다 관점이 다르다는 게 곧 틀림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태평양도 한국인의 관점에서는 동해이지만, 미국인의 관점에선 서해이다. 같은 바다를 두고도 보는 위치에 따라서 다르게 부르지만, 바다의 본질은 결국 바다인 것이다.
이해를 뜻하는 영어의 Understand는 Under와 Stand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낮은 위치에 서 보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뜻이다. 자신이 늘 우월하다는 자만심으로는 서로 갈등만 증폭되고 오해만 축적될 뿐이다. 머릿속의 오해가 가슴속의 이해로 가는 길은 이처럼 멀다.
우리는 화가인가, 목수인가. 삶의 현자는 아름다운 그림과 튼튼한 집 모두를 보는 사람일 것이다. 한 시간을 오도 가도 못한 채 카페에 갇혀 비를 보는 일은 분명 효율적 관점에서 낭비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떠도는 생각을 붙잡아 원고 쓸 아이디어를 얻었으니 내겐 더없이 좋은 시간이다. 똥은 방에 있으면 오물이지만, 밭에 있으면 훌륭한 거름이다. 인식의 틀부터 만들어 나를 가둬 두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