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바꾼 많은 것들 중 여행이 있다. 예전엔 우리가 여행을 떠났다면, 이제 여행이 우리를 떠났다. 해마다 이맘때, 나는 비행기를 타고 늘 이국의 ‘날짜변경선’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다음 생에서가 아니라 이 생에서, 다른 생을 살아보는 일이 여행”이라는 친구의 말처럼 지구인으로 태어나 다양한 삶을 보고 싶었다. 또 여행에는 일상에서는 누릴 수 없는 행복 몇 가지가 있다.
호텔에 준비된 “do not disturb” 푯말을 좋아한다. ‘숨어있기 좋은 방’을 얻어 “do not disturb”를 걸면 시끄러웠던 내 삶에 거대한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씌운 기분이 든다. 청소 걱정 없이 뜨거운 욕조 안에서 쉬면서,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는 순간이 내겐 여행 최고의 사치다. 타국의 낯선 언어와 공기는 늘 내게 다른 방식의 읽기를 요구한다. 새와 거북이만 있던 세이셸공화국의 버드 아일랜드는 인터넷이 아예 터지지 않아, 새소리를 친구 삼아 책을 읽었다. 그곳에서 읽었던 필립 로스와 하이스미스의 모든 문장에는 그때의 ‘울음’소리가 각인돼 있다.
어두운 밤 ‘날짜변경선’ 위를 날아갈 때의 기분 역시 내겐 여행의 위안이다. 단 하루지만, 그 ‘하루’ 사이에 벌어졌던 가슴 아픈 사건의 전날로 돌아간다는 상상만으로 어쩐지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벗어나기 위해’ 떠났지만, 이제 다시 ‘돌아가기 위해’ 떠난다. 내 방, 내 책상, 내 침대, 좋아하는 공원과 단골 가게들, 사방 몇 킬로미터 안에 존재하는 내 세계로 말이다.
여행은 비슷해서 고마운 줄 몰랐던 지루한 일상을 애틋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모든 여행에는 그러므로 도돌이표가 필요하다. ‘arrival’이라는 표지판이 보이면, 이제 우리가 일상이라는 여행을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여행이 우리를 떠났다”가 아니라 “우리가 여행을 떠났다”가 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