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강원도 남부와 경북 북부를 여행했다.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굽이진 지형이었다. 친구가 “첩첩산중에 있으니까 참 좋다”고 말했다. 첩첩산중은 힘든 상황을 의미하는 말 같다는 내 말에 그녀는 그래서 더 좋다고 했다. 이미 첩첩산중에 들어와 있으니 중간쯤에는 도달해 있는 셈이고, 그러니 괜찮다는 것이다.
호텔의 느긋한 조식을 먹으며 가을 창밖을 바라봤다. 아침 7시, 바싹 구운 식빵과 아메리카노 한잔에도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한자로 행복의 ‘행’은 다행할 행(幸)이다. 놀랍게도 이것은 매울 신(辛) 자와 많이 비슷하다. 나로선 매울 ‘신’은 주로 ‘고생’이나 ‘괴로움’을 뜻할 때 많이 쓴다는 것 역시 참 흥미롭다. 행복과 불행은 어쩌면 동전의 양면처럼 가까이 붙어 있는 것 아닐까. 기쁘고 좋은 일만 행복이라 부르는 데 멈추지 않고, 별일 없는 일상에서도 ‘행복’을 찾아내 ‘다행’으로 호명하다 보면 우리는 지금보다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도 습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춰야 행복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충분함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미 충분하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파랑새 증후군’에 시달린다. 늘 ‘여기’가 아닌 ‘저기’를 꿈꾸기에 행복이 저 멀리 있는 것이다.
시인 장석주는 자신의 글에서 사과를 두 개 가진 사람과 한 개 가진 사람 중에서 누가 더 행복하겠냐고 묻는다. 그는 한 개가 되었든 두 개가 되었든 그것을 깨물어 맛있게 먹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답한다. 시인의 말처럼 행복은 조건 문제이기보다 향유 문제다.
경북 영주의 부석사 가는 길에 잘 익은 사과나무가 가득했다. 만원을 내고 밭에 들어가 사과 따기 체험에 참여했다. 잘 익은 사과를 닦아 한 입 베어 물자 새콤달콤함에 입안에 침이 왈칵 고였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고, 세 잎 클로버 꽃말은 행복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주위에는 희귀한 행운보다는 수많은 행복이 더 많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