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골든 레트리버를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아파트에서 활동성이 강한 대형견을 키우는 건 많은 인내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코로나 때문에 요즘 심각하게 주택으로 이사를 고민 중이지만 아직 자신이 없다. 생명이 있는 존재를 책임진다는 것이 여전히 두렵기 때문이다.
얼마 전 20년 가까이 키워온 아이비가 말라죽은 걸 발견했다. 오래전 양재동의 꽃시장에서 2000원에 산 아이비를 내 책상에 두었다. 아이비와 함께 한 책상에서 여러 권의 단편과 장편을 썼다. 작가로서 성장하는 시기였다. 키를 맞추듯 함께 자라난 아이비가 작은 화분 밖으로 넘쳐흐르자 곧 거실의 큰 화분으로 옮겼다. 이후 아이비는 10m도 넘게 무럭무럭 자랐고, 집 거실의 TV 탁자에서 십수 년을 보냈다.
오래 전 벤저민을 가지치기하고 가지 하나를 화병의 물속에 담은 적이 있다. 별생각 없이 화병에 담았을 뿐인데, 정말 뿌리를 내리고 생명이 이어졌다. 그것을 ‘꺾꽂이’라고 부른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그 벤저민은 부엌의 양지 바른 창가 턱에서 나와 함께 10년을 보냈고, 어느 날 작별하듯 시들어 버렸다.
생명이 있는 것은 언젠가 떠난다. 그리고 작별에는 예식이 있다. 내 친구 K는 단정하고 깔끔한 성격인데 놀랍도록 감성적인 면이 있다. 그녀는 오래 함께한 물건이 그 쓰임을 다했을 때, 손을 잡고 입을 맞추며 감사의 인사를 소리 내어 전하곤 했다. 그녀가 15년을 함께한 자동차를 중고로 판 적이 있었다. 자동차를 시장에 내놓기 전 그녀는 “그동안 함께해줘서 참 고마웠다”며 운전대와 보닛에 작별의 입맞춤을 했다. 그 모습이 좋아서 나도 바싹 말라버린 아이비의 이파리에 입술을 댔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잘 가”라고 속삭이자 오랜 친구를 보내듯 눈물이 핑 돌았다.
신기하게도 며칠 전 아이비가 떠나간 빈 화분에 조그만 싹이 보였다. 이것이 아이비인지, 어디서 날아온 홀씨인지 모르지만 화분엔 초록 이파리가 움트고 있었다. 생명은 이리 들고 나는구나 싶다. 내게 온 이 생명이 고맙다.